또 다른 언더그라운드의 새로운 해석
`95 겨울, 꽃다지 콘서트
글/이영미(음악평론가)
언더그라운드 가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즈음, 우리는 과연 우리나라에 정확한 의미의 언더그라운드가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언더그라운드란 상업적인 시장구조, 즉 상업음반과 방송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음악활동을 하는 대중음악인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언더그라운드가 아니라 '언더TV브로드캐스팅'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에 비해 상업적 유통구조로부터 벗어나 잇는 진정으로 언더그라운드의 정신과 실제를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음악은, 그간 민중가요라고 지칭되는 노래문화였다. 그런 점에서 민중가요는 우리나라의 진정한 언더그라운드 가요라고 할 만하다.
1990년대 이후
[희망의 노래 꽃다지]는 명실공히 민중가요와 노래운동 중심의 흐름을 대표하였다. 1980년대 초중반이 노래모임
[새벽]의 노래들이, 1980년대 말에는 김호철의 노동가요와
[노찾사]의 노래들이 민중가요의 중심이었다면, 1990년대, 정확히 말하여 1991년 이후 민중가요의 중심적 흐름을 주조해 온 것은
[꽃다지]였다.
조민하, 유인혁, 김성민 등 이 시기 최고 인기 민중가요의 창작자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민들레처럼>,
<사람이 태어나>로 이어지는 최고 인기 민중가요들이
[꽃다지]에서 나왔다. 따라서
[꽃다지]의 최근 작품 경향이 어떠한가를 살펴보는 것으로 민중가요의 중심적인 작품경향을 살펴보는 것이 그리 무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콘서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꽃다지의 작품 경향이 다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체 민중가요의 판도와 대중의 정서적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이를 반영하려 노력해왔고, 그 결과 민중가요의 중심적 작품 경향의 흐름을 이끌어온
[꽃다지]의 변화이기 때문에 주목을 요한다. 말하자면 이제 민중가요의 작품 경향이 다시 한 번 바뀌고 있음을 예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민중가요가 다시 열정을 되찾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록 양식의 적극적인 수용이다.
1991년 이후 민중가요의 중심적 흐름은 운동 퇴조기의 정서를 반영한 노래들이었다. 60년대식 단조 이지리스닝과 포크를 결합한 듯한 이른바 서정가요가 작품의 중심을 이룬 것은 우연이 아니다. 회한과 반성, 패배의 아픔이 배어있는
<민들레처럼>,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창살 아래 사랑아>,
<전화 카드 한 장>,
<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 등이 모두 이러한 잔잔하고 차분하게 투쟁기의 열정을 가라앉힌 서정가요들이었고, 쾌활한 분위기의 일상가요
<사람이 태어나>나 행진곡
<다시 한 번 투사가 되어> 역시 이러한 가라앉은 분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
<바위처럼>을 계기로 분위기는 다시 상승하며,
<한 걸음씩>,
<새로운 선택>을 거쳐, 이번 콘서트에서 새로 발표된 신곡들은 다시 새로운 열정을 채워낸 노래들이다. 그 열정은 80년대의 투쟁적 행진곡으로서가 아니라, 록 양식의 열정과 이에 영향을 다분히 받은 폴카풍 이지리스닝 곡들의 경쾌하고 세련된 열정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록 양식의 수용은 새로운 대중음악적 감수성을 가지고 성장해 온 현재의 20대 젊은층들의 음악적 감수성을 적극 수용하고자 하는 시도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신곡
<내게 그렇게 말하지마>,
<우리 그렇게 세상을 만나자>,
<노래만큼 좋은 세상>,
<자 우리 가볼까>는
<한 걸음씩>과
<새로운 선택>에서의 어정쩡한 수준을 벗고, 록 양식을 좀 더 성숙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성곡적이다. 일렉기타가 주도하는 연주도 그러하며, 록의 열정을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려는 대중의 열정으로 소화했다는 점에서, 안치환의
<자유>나 천지인의 몇몇 노래들과 함께 록 양식의 민중가요의 새로운 성과로 볼 만하다.
[꽃다지]의 이러한 성과들로 비로소 민중가요에서도 록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감을 확실하게 해준다.
가사나 선율에서는 록이 아니면서도 록적인 편곡으로 새로운 느낌을 주는
<전화카드 한 장>이나 국악적 가창 처리와 록적인 일렉기타의 후주부가 절묘하게 결합한
<김순동 할아버지>도
[꽃다지]의 치열한 음악적 실험을 엿보게 한다.
특히 올 가을 노천극장에서 올린
<우리 한 걸음으로>의 공연에서도 확인했듯이, 민중가요를 입과 소리로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르고자 하는 젊은 대중들의 욕구는 민중가요의 댄스뮤직의 현란함과는 다른 집단적 신명의 건강함을 지니고 있는 것인데, 연대 노천극장 전체를 메웠던 이러한 민중가요의 춤바람이 이번 꽃다지 콘서트에까지 이어지고 있어, 내년에도 이러한 춤바람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하나의 음악양식을 고집하지 않고, 대중의 정서 변화와 요구에 따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꽤나 힘든 노력으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고 그로써 다양한 음악양식을 소화해내는 꽃다지는 이번 콘서트로 1996년의 민중가요의 주도적 흐름을 점치고 있다. 그들의 예견이 이번에도 적확하게 맞아떨어질 것인지 자못 궁금한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